2012년 12월 18일 화요일

5제본기 30


1-030.
(원문)
太史公曰 : 學者多稱五帝, 尙矣。 然尙書獨載堯以來 ; 而百家言黃帝, 其文不雅馴, 薦紳先生難言之。 孔子所傳宰予問五帝德及帝繫姓, 儒者或不傳。 余嘗西至空桐, 北過涿鹿, 東漸於海, 南浮江淮矣, 至長老皆各往往稱黃帝、堯、舜之處, 風敎固殊焉, 總之不離古文者近是。 予觀春秋、國語, 其發明五帝德、帝繫姓章矣, 顧弟弗深考, 其所表見皆不虛。 書缺有閒矣, 其軼乃時時見於他說。 非好學深思, 心知其意, 固難爲淺見寡聞道也。 余幷論次, 擇其言尤雅者, 故著爲本紀書首。
(음역)
태사공왈 : 학자다칭오제, 상의。 연상서독재요이래 ; 이백가언황제, 기문불아순, 천신선생난언지。 공자소전재여문오제덕급제계성, 유자혹부전。 여상서지공동, 북과탁록, 동점어해, 남부강회의, 지장로개각왕왕칭황제、요、순지처, 풍교고수언, 총지불리고문자근시。 여관춘추、국어, 기발명오제덕、제계성장의, 고제불심고, 기소표견개불허。 서결유간의, 기질내시시견어타설。 비호학심사, 심지기의, 고난위천견과문도야。 여병논차, 택기언우아자, 고저위본기서수。
(주석)
1. 태사공(太史公)-3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태사는 관직 명칭으로 하, 상, 주에서 사관(史官)과 역관(曆官)의 우두머리이다. 서주와 춘추시기에는 지위가 매우 높은 조정 대신으로 문서와 책명을 관장하고 겸하여 역사, 서적, 역법, 제사 등을 관할하였다. 진대에는 태사령(太史令)으로 일컬었고, 한대에는 태상(太常)에 예속되어 천문역법을 관장하였다. 태사공은 서한(西漢) 무제(武帝) 시기에 설치한 관직 명칭이다. 지위는 승상(丞相)의 위이고, 천하의 보고서는 먼저 태사공에게 올린다. 태사공의 구체적인 직권은 태사령(太史令)의 업무와 인재를 선발하는 직책을 담당하고 있다. 둘째, 태사는 《사기》를 가리키기도 한다. 셋째, 사마천은 《사기》에서 자신의 부친 사마담(司馬談)과 자신을 일컫는 호칭으로 사용하였다.
2. 5제(五帝)-오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지만 비교적 유력한 것으로 두 가지가 있다. 첫째, 태호(太昊), 염제(炎帝), 황제(黃帝), 소호(少昊), 전욱(顓頊)이 있다. 그 의미는 동서남북중의 5개 방위에 천신(天神)이 있고, 동방은 태호, 남방은 염제, 서방은 소호, 북방은 전욱, 중앙은 황제가 담당하였다. 둘째, 황제, 전욱, 곡(嚳), 요(堯), 순(舜)으로, 중국 상고시대 전설중의 5명의 제왕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두 번째의 학설을 따랐다.
3. 상(尙)-오래되다.
4. 상서(尙書)-본래 의미는 중국 상고시대 왕실의 문서를 모아 놓은 책이다. 또 상은 풀어 놓다는 의미이고 서는 문자기록, 즉 비밀이 해제된 왕실의 문서라는 의미가 있다. 《상서》는 전국시대에 《서(書)》로 일컬었고, 한대에 《상서》로 일컬었으며, 유가의 5경중의 하나로 《서경》이라고 일컬었다. 여러 가지 체제의 문헌을 모아 놓은 것으로 중국의 현존하는 최초의 역사 문헌으로, 《우서(虞書)》, 《하서(夏書)》, 《상서(商書)》, 《주서(周書)》로 구분되어 있다. 내용적으로는 《주서》의 〈목서(牧誓)〉에서 〈여형(呂刑)〉까지의 16편은 서주의 사료이고, 〈문후지명(文侯之命)〉,〈비서(費誓)〉,〈진서(秦誓)〉는 춘추시대의 사료이며, 〈요전(堯典)〉, 〈고요모(皐陶謨)〉, 〈우공(禹貢)〉은 전국시대에 기록된 사료이다.
5. 요(堯)-1-012-주석3 참고.
6. 백가(百家)-3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학술상의 각종 학파를 말한다. 둘째, 여러 가지 분야에 종사하는 모종의 전문 활동가 혹은 기능 있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셋째, 서적의 명칭으로도 사용된다.
7. 황제(黃帝)-1-001-주석1 참고.
8. 아순(雅馴)-문장이 우아하고 숙련되다.
9. 천신(薦紳)-3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관직이 있거나 관리를 역임한 사람을 가리킨다. 달리 진신(縉紳)으로 기록한다. 둘째, 일반적으로 사대부를 말한다. 셋째, 고급관리의 옷차림을 말하기도 한다. 또 천(薦)은 진(搢)과 통한다.
10. 공자(孔子)-공자는 기원전 551년 현재의 산동성 곡부시에서 출생하였다. 성은 자(子)이고 씨는 공(孔)이며 이름은 구(丘)이고 자는 중니(仲尼)이다. 춘추시대 말기의 사상가 겸 교육자이고 유가의 창시자로 전해오고 있다.
11. 5제덕(五帝德)-《대대예기(大戴禮記)》 62편과 《공자가어(孔子家語)》 23편에 기록되어 있다. 즉 재여(宰予)가 공자에게 5제(황제, 전욱, 곡, 요, 순)의 품덕, 치적과 생애에 관한 일을 질문하였고, 특별히 고대 제왕의 덕성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상세히 토론하였다. 사마천의 〈5제본기〉는 이것으로 부분적 근거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2. 제계성(帝繫姓)-《대대예기》와 《공자가어(孔子家語)》에 기록되어 있다. 내용은 고대 제왕의 세계(世系)를 기록하였는데, 위로는 소전(少典)이 헌원(軒轅)을 낳고부터 아래로는 하(夏)나라의 계(啓)에까지 이르렀다.
13. 유자(儒者)-유학을 숭배하고 유가의 경전을 학습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한대(漢代) 이전에는 6예 즉 서(書),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수(數)를 학습하는 사람을 가리켰고, 그 이후에는 일반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을 일컬었다.
14. 공동(空桐)-1-005-주석3 참고.
15. 탁록(涿鹿)-1-004-주석4 참고.
16. 점(漸)-유입, 진입.
17. 부(浮)-지날, 초과할.
18. 강회(江淮)-1-018-주석11 참고.
19. 장로(長老)-노인.
20. 순(舜)-1-016-주석8 참고.
21. 고(固)-물론, 본디부터.
22. 춘추(春秋)-편년체로 기록된 유가 경전중의 하나이다. 전해오기를 공자가 노나라의 사관이 편찬한 《춘추》에 의거해서 정리하고 수정하여 완성한 것이다. 기원전 722년부터 기원전 481년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중국 최초의 편년체 역사서이다.
23. 국어(國語)-중국 최초로 나라별 역사를 기록한 서적으로, 주(周)나라 왕실과, 노(魯), 제(齊), 진(晉), 정(鄭), 초(楚), 오(吳), 월(越)나라 등 8개 나라의 역사를 기록했다. 주로 역사 인물의 언론에 편중하였고 춘추시기의 사회상황을 반영하였다. 특히 주나라 목왕(穆王) 12년(기원전 990년)부터 기원전 453년 지백(智伯)이 멸망할 때까지, 각 나라의 귀족 상호간의 조빙(朝聘), 연회(宴會), 풍간(諷諫), 변설(辨說), 응대(應對) 및 부분적 역사사건과 전설 등을 포함하였다. 작자는 사마천이 좌구명(左丘明)이라고 하였지만, 한나라 이후에 많은 학자들이 의문을 제기하여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여 확정되지 않았다.
24. 장(章)-현저함, 명백하게 나타남, 또는 상고시대의 문자로 기록된 서적.
25. 고제(顧弟)-단지. 제는 제(第)와 같다.
26. 표견(表見)-기록하다. 견은 현(現)과 통한다.
27. 허(虛)-허망, 거짓.
28. 서결유간(書缺有閒)-《상서》에 빠져 없어진 부분과 공백이 있다.
29. 질(軼)-일(佚)과 통한다. 없어졌다.
(국역)
태사공이 말하기를 학자들이 대부분 황제, 전욱, 곡, 요, 순 등 5제를 일컫지만, 시대가 너무 오래되었다. 그러나 《상서》에 홀로 요 이래의 일을 기록하였고, 그리고 많은 학파에서도 황제를 말했지만 그 문장이 우아하거나 숙련되지 않아서 사대부와 선생들도 황제에 대해서 말하기가 어려웠다. 공자에 의해 전수된 재여가 공자에게 〈5제덕〉 및 〈제계성〉에 관하여 질문하는 2편의 문장도 유생들 중에서 어떤 사람은 전수하지 않았다. 나는 일찍이 서쪽으로는 공동산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탁록을 지났으며, 동쪽으로는 바닷가에 진입하고, 남쪽으로는 장강과 회하를 지나갔는데, 노인들이 모두 황제, 요, 순이 활동했던 지역이라고 말하는 곳에 가보면 풍속과 교화가 본디부터 달랐으며, 대체적으로 말해서 옛날 문헌 즉 《상서》에 위배되지 않고 사실과 가까웠다. 내가 《춘추》와 《국어》를 읽어보고 그 중에서 〈5제덕〉과 〈제계성〉의 문장이 매우 분명함을 알게 되었는데, 단지 사람들이 깊이 고찰하지 않았을 뿐 그 기록한 바가 모두 허망한 것은 아니었다. 《상서》에는 빠져 없어진 부분과 공백도 많은데, 거기서 빠진 부분은 또한 다른 서적에 보인다. 배우기를 좋아하고 깊이 생각해서 마음으로 그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진실로 얕은 견해와 들은바가 적은 사람이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내가 전부 합해서 순서에 의거하여 논술하고, 서술한 내용 중에서 특별히 우아한 문장을 선택하여 〈본기〉를 저술하였으며 전체 서적의 제1편으로 삼았다.

(참고)
사마천의 가계(家系)
왕 조
시 기
이 름
직 위
주(周)
기원전 9-8세기
사마씨
(이름불명)
?
진(晉)
기원전 652년경
?
진(秦)
기원전 620년
?
〃 惠文王
기원전 320년경
사마착
(司馬錯)
將軍?
〃 昭襄王
기원전 300년경
사마근
(司馬靳)
將軍?
〃 始皇帝
기원전 220년경
사마창
(司馬昌)
鐵官
한(漢) 文帝
기원전 202년
-기원전 157년
사마무택
(司馬無澤)
市長
〃 景帝
기원전 188년
-기원전 141년
사마희
(司馬喜)
五大夫
〃 武帝
기원전 156년
-기원전 87년
사마담
(司馬談)
太史令
사마천
(司馬遷)
太史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