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1일 일요일

우중명절


우중명절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이면 00선배가 생각난다.
그 선배는 비 오는 날은 우중명절(雨中名節) 이라고 그랬다.
그리고 나와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거리불문(距離不問), 청탁불문(淸濁不問)하고,
우중명절(雨中名節)에 쐬주 한 잔 걸치자고.

대학시절 학교에 가다가도 비만 오면 그 선배의 연락을 기다렸다.
귀신에 홀린 듯이 흑석동 중대 앞 어느 허름한 한옥 집 마루에 모여서,
두꺼비 몇 마리와 전구지 지지미에 진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비를 감상했다.
그 선배는 매혹의 바리톤 목소리로 명태를 열창하고,
나는 꼴갑지 않게 이백(李白)의 장진주(將進酒)를 중국어로 읽었지.

어느 날 그 선배는 세상 더럽다고 먼저 하늘나라로 가셨다.
자기 흔적은 다 태워서 한강에 뿌려달라는 유언만 남기고......
그날도 비가 오는 우중명절(雨中名節)이었는데,
오늘은 우연히도 비가 오는 단오절(端午節) 이구나.
선배님 잘 계시지요! 거기도 비가 오나요?

                                                            (2015,6,20, 비 내리는 단오날, 김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