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2.
(원문)
棄爲兒時, 屹如巨人之志。 其游戱, 好種樹麻、菽, 麻、菽美。 及爲成人, 遂好耕農, 相地之宜, 宜穀者稼穡焉, 民皆法則之。 帝堯聞之, 擧棄爲農師, 天下得其利, 有功。 帝舜曰 : “棄, 黎民始飢, 爾后稷播時百穀。” 封棄於邰, 號曰后稷, 別姓姬氏。 后稷之興, 在陶唐、虞、夏之際, 皆有令德。
(음역)
기위아시, 흘여거인지지。 기유희, 호종수마、숙, 마、숙미。 급위성인, 수호경농, 상지지의, 의곡자가색언, 민개법칙지。 제요문지, 거기위농사, 천하득기리, 유공。 제순왈 : “기, 여민시기, 이후직파시백곡。” 봉기어태, 호왈후직, 별성희씨。 후직지흥, 재도당、우、하지제, 개유영덕。
(주석)
1. 기(棄)-1-026-주석8 참고.
2. 흘(屹)-견고, 안정, 동요하지 않다.
3. 거인(巨人)-어른.
4. 미(美)-잘 자라다.
5. 상지지의(相地之宜)-각기 다른 토양에서는 각기 다른 생물의 성장에 적합함을 관찰하다. 간략하게 토지의 특성을 관찰하다의 의미이다.
6. 가색(稼穡)-심는 것을 가라고 하고 수확하는 것을 색이라 한다.
7. 법칙(法則)-본받다.
8. 요(堯)-1-012-주석3 참고.
9. 농사(農師)-고대에 농업을 담당하는 관리이다. 달리 주나라 시대에는 상사(上士)를 가리키는 관직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10. 순(舜)-1-016-주석8 참고.
11. 태(邰)-후직(后稷)이 출생하고 책봉 받은 지역이며, 현재의 옹주(雍州) 무공현(武功縣)이다. 여기에 후직과 강원(姜嫄)의 사당이 있다.
12. 후직(后稷)-1-026-주석8 참고.
13. 희씨(姬氏)-1-029-주석21 참고.
14. 도당(陶唐)-1-012-주석3 참고.
15. 우(虞)-1-016-주석8 참고.
16. 하(夏)-2-001-주석1 참고.
17. 영덕(令德)-아름다운 덕행, 또는 고상한 도덕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국역)
기는 어린아이 일 때에 이미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의지처럼 굳건하였다. 놀이를 할 때는 삼과 콩 심는 것을 좋아하였고, 삼과 콩도 잘 자랐다. 어른이 되어서는 농사짓는 것과 토지의 특성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였고, 곡식을 재배하기에 적합한 곳에서는 심고 거두었으며 백성들도 모두 그를 본받았다. 요가 이 일을 듣고, 기를 등용하여 농업을 담당하는 관리인 농사에 임명하였으며, 천하 사람들이 모두 그의 이로움을 얻어서 공로가 컸다. 순이 말하기를 기, 이전에 백성들이 굶주리기 시작하자, 그대 후직은 때 맞춰 온갖 곡식을 심어서 구제하였다. 기를 태에 책봉하고 후직이라고 일컬었으며, 별도로 희라는 성씨를 하사하였다. 후직 집안의 흥기는 요, 순, 우의 시기이고, 대대로 모두 아름다운 덕행이 있었다.
(참고)
기(棄)와 농업사회-주나라는 황하 상류, 위수(渭水) 중류 및 섬서(陝西)와 감숙(甘肅)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다가, 나중에 주원(周原)에 정착하였으므로 주(周, 西周)라고 일컬었다. 원래 희성(姬姓) 부족으로 주위의 강성(姜姓) 부족과 대대로 통혼하여 부락연맹을 구성하였다. 시조는 기이고, 기의 이후에 부계 씨족사회로 진입하였다고 여겨진다. 기는 성장하면서 농사짓는 것을 좋아하여 오곡을 심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요(堯)의 통치 시기에는 농사(農師)에 임명되었고, 순(舜)의 통치 시기에는 그를 합(郃)이라는 지역(현재의 陝西省 武功縣 외곽)에 봉하고 후직(后稷)이라 일컬었다. 즉 기의 농업과 관계된 전설로 볼 때 주나라는 농업 위주의 사회였음을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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