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2일 토요일

은본기 5


3-005.
(원문)
伊尹名阿衡。 阿衡欲奸湯而無由, 乃爲有莘氏媵臣, 負鼎俎, 以滋味說湯, 致于王道。 或曰, 伊尹處士, 湯使人聘迎之, 五反然後肯往從湯, 言素王及九主之事。 湯擧任以國政。 伊尹去湯適夏。 旣醜有夏, 復歸于亳。 入自北門, 遇女鳩、女房, 作女鳩女房。

(음역)
이윤명아형。 아형욕간탕이무유, 내위유신씨잉신, 부정조, 이자미세탕, 치우왕도。 혹왈, 이윤처사, 탕사인빙영지, 오반연후긍왕종탕, 언소왕급구주지사。 탕거임이국정。 이윤거탕적하。 기추유하, 복귀우박。 입자북문, 우여구、여방, 작여구여방。

(주석)
1. 이윤(伊尹)-3-004-주석7 참고.
2. 아형(阿衡)-이윤의 이름이다. 달리 상나라의 관직 명칭으로 군주를 보필하거나 왕실의 자제를 교육하는 사보(師保) 관리를 아형 또는 보형(保衡), 아보(阿保)라고 일컫는다. 나중에는 군주를 보좌하는 관리로 변했다.
3. 간(奸)-구할, 요구할.
4. 무유(無由)-기회 또는 방법이 없다.
5. 유신씨(有莘氏)-상나라의 세방(洗方) 지역이 고대 유신씨의 활동범위이고, 대략 변주(汴州)의 진류현(陳留縣) 일대이다. 우왕(禹王)의 부친 곤(鯤)의 부인이 유신씨의 여성이고, 탕의 부인도 유신씨의 여성이다.
6. 잉신(媵臣)-시집가는 여성에 딸려 보내는 신하.
7. 정조(鼎俎)-솥과 도마. 달리 고대에 제사 또는 연회에 희생물이나 기타 음식을 담아놓는 그릇을 가리킨다.
8. 자미(滋味)-맛
9. 세(說)-남에게 말하여 자기 의견을 따르게 하다.
10. 탕(湯)-2-033-주석9 참고.
11. 치(致)-실행하다, 성취하다.
12. 왕도(王道)-왕도는 맹자(孟子)의 학설에서 최초로 출현하였다. 유가(儒家)에서 여기기를 성인이 군주가 되어 통치하는 것을 왕도라고 하며, 여기서 성왕(聖王)의 도라는 말이 나타났다. 즉 왕은 지고무상의 의미이고, 왕도는 군주가 인의(仁義)로써 천하를 다스리고, 덕정(德政)으로써 백성을 통치하는 방법으로 패도(覇道)와 대칭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13. 처사(處士)-고대에는 덕망과 재주가 있지만 은거하여 관리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켰다. 후대에는 보편적으로 관직을 담당한 적이 없는 공부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14. 5반(五反)-다섯 번을 거절함.
15. 소왕(素王)-소박함을 중시하는 태소상황(太素上皇)을 가리키며, 간략하게 소왕이라고 일컫는다. 달리 공자(孔子)를 가리키며, 또는 사관(史官)을 일컫기도 한다.
16. 9주(九主)-3가지 학설이 있다. 첫째, 사마정(司馬貞)의 주장으로 3황(三皇) 5제(五帝)와 우(禹)를 포함한 군주를 가리킨다. 둘째, 유향(劉向)의 주장으로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는 법군(法君), 제멋대로 행동하는 전군(專君), 신하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수군(授君), 몸소 힘쓰고 노력하는 노군(勞君), 논공행상이 균등한 등군(等君), 백성의 수고를 착취하는 기군(寄君), 나라를 망치는 파군(破君), 성을 쌓으면서 덕을 쌓지 않는 국군(國君), 어린 나이에 즉위한 삼세사군(三歲社君)이 있다. 셋째, 마왕퇴(馬王堆)에서 출토된 한대(漢代)의 백서(帛書)의 기록으로 법군(法君), 전수지군(傳授之君), 노군(勞君), 반군(半君), 기주(寄主), 파방주(破邦主, 2인), 멸사지주(滅社之主, 2인)가 있다.
17. 적(適)-가다.
18. 추(醜)-추하다.
19. 박(亳)-3-003-주석5 참고.
20. 여구(女鳩)-탕(湯) 통치 시기의 현인이다.
21. 여방(女房)-탕(湯) 통치 시기의 현인이다.

(국역)
이윤의 이름은 아형이다. 아형은 탕을 만나려고 하였지만 방법이 없어서 이에 유신씨 종족의 시집가는 여성에 딸려 보내는 신하가 되었고, 솥과 도마 등 요리도구를 짊어지고 가서 음식의 맛으로 비유하여 탕에게 정치하는 방법을 유세하였으며, 인의로써 천하를 다스리고 덕정으로써 백성을 통치하는 왕도를 실행하게 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윤이 벼슬하지 않고 공부하고 있을 때에 탕이 사람을 보내서 그를 초빙하여 맞아들이려고 하였는데, 다섯 번이나 거절한 이후에 비로소 가기를 승낙하고 탕을 따랐으며, 고대의 제왕인 소왕 및 9가지 군주의 유형에 대한 일을 이야기 하였다고 한다. 탕은 그를 등용하여 나라의 정사를 맡겼다. 이윤은 탕을 떠나서 하나라로 갔다. 이미 하나라의 정치가 추악한 상황에 이른 것을 알고 다시 박으로 돌아왔다. 북문으로 들어오다가 상나라의 어진 인물인 여구와 여방을 만났으며, 〈여구〉와 〈여방〉을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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