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5일 토요일

은본기 3


3-003.
(원문)
成湯, 自契至湯八遷。 湯始居亳, 從先王居, 作帝誥。

(음역)
성탕, 자설지탕팔천。 탕시거박, 종선왕거, 작제고。

(주석)
1. 성탕(成湯)-2-033-주석9 참고.
2. 설(契)-1-026-주석7 참고.
3. 8천(八遷)-8번이나 도읍을 옮겼는데, 현재는 상구(商丘)-박(毫)-지석(砥石)-번(蕃) 등이 고증되었으며, 대략 하남(河南)과 산동(山東), 하북(河北)의 지역이었다. 그들이 빈번히 이동한 원인은 아마도 수초를 따라서 방목 생활을 하였던 것 같으며, 이동 과정 중에 세력과 활동 범위가 확대되어 상족의 발전에 토대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4. 종선왕거(從先王居)-선왕(조상)의 거처를 쫒아가다. 즉 상나라의 시조인 설(契)의 부친 곡(嚳)이 일찍이 도읍을 박(亳)에 정했는데, 탕이 즉위하면서 선왕을 추모하기 위해서 상구(商丘)로부터 다시 박으로 천도한 것을 말한다.
5. 박(亳)-상나라의 도읍지 이름이고 하남성(河南省) 상구를 가리킨다. 달리 언사성(偃師城)을 가리킨다는 주장도 있다.
6. 제고(帝誥)-선왕에게 알리는 글이다. 《고문상서》에 내용이 보인다.

(국역)
성탕은 시조인 설부터 자신에 이르기까지 8번 도읍을 옮겼다. 탕은 박에 도읍을 정하고 거주하기 시작하였는데, 선왕(곡)이 박에 도읍을 정하고 거주한 것을 추모하며 따른 것이며, 선왕에게 알리는 글인 〈제고〉를 작성하였다.

(참고)
설부터 탕까지 8번 천도한 지명과 이유-현재는 상구(商丘)-박(毫)-지석(砥石)-번(蕃) 등이 고증되었으며, 대략 하남(河南)과 산동(山東), 하북(河北)의 지역이었다. 나머지 4곳의 지명은 아직 연구 중이다. 그들이 빈번히 이동한 원인은 아마도 유목민족으로서 수초와 수리의 편리함을 따라서 방목 생활을 하였던 것 같다. 그 외에 황하의 잦은 범람으로 국가재정의 곤란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결과적으로 이동 과정 중에 세력과 활동 범위가 확대되어 상족의 발전에 토대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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