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5일 목요일

5제본기 2

1-002.
(원문)
軒轅之時, 神農氏世衰, 諸侯相侵伐, 暴虐百姓, 而神農氏弗能征。 於是軒轅乃習用干戈, 以征不享, 諸侯咸來賓從。 而蚩尤最爲暴, 莫能伐。

(음역)
헌원지시, 신농씨세쇠, 제후상침벌, 포학백성, 이신농씨불능정。어시헌원내습용간과, 이정불향, 제후함래빈종。이치우최위포, 막능벌。

(주석)
1. 헌원(軒轅)-1-001-주석4 참고.
2. 신농씨(神農氏)-신석기시대 말기에서 청동기시대 초기에 강수(姜水) 유역의 강성(姜姓) 부락의 통치자이다. 5행중 화(火)의 제왕으로 염제(炎帝)라고 불리며 염제 부락연맹의 통치자로 전해온다. 염제 부락연맹 중에서 세력이 가장 강한 부락으로 열산씨(烈山氏) 부락이 있는데, 열산은 산에 불을 지른 후에 곡식의 종자를 심는다는 뜻이며 농경에 적합한 강한(江漢) 평원에서 활동하였다. 염제는 농기구의 발명과 토양을 살필 줄 알았고 백성들에게 5곡을 파종하는 법을 가르쳤으며, 음식물을 증가시켜서 민간에서는 신농(씨) 또는 5곡제선(五穀帝仙), 직신(稷神)으로 존경하였다. 또 많은 초목을 맛보고 식용으로 사용하여서 후대에 그를 의약(醫藥)의 시조로 추대하였고, 8괘(卦)를 겹쳐서 64괘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3. 제후(諸侯)-제후는 중국 고대에 중앙정권이 분봉한 각 나라의 군주를 일컫는 칭호이다. 주대(周代)에는 공작(公爵), 후작(侯爵), 백작(伯爵), 자작(子爵), 남작(男爵)의 5등급으로 나누었다. 제후는 명의상 왕실에 복종하고 조공, 복역 및 출병 등의 의무가 있다.
4. 백성(百姓)-백관(百官)을 가리킨다. 중국고대 노예사회에서는 일반 서민은 성(姓)이 없고 관직이 있는 귀족만이 성이 있었다. 그래서 백성은 귀족 또는 백관을 일컫는 말이고, 전국시대 이후에 점차 평민을 가리키게 되었다. 평민은 만성(萬姓), 노백성(老百姓)으로 기록하였다.
3. 향(享)-조공(朝貢), 조헌(朝獻) 등으로 종주국의 제사와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가리킨다.
4. 빈종(賓從)-빈복(賓服)과 동일, 복종하다.
5. 치우(蚩尤)-황하 하류에서 장강의 회하(淮河) 유역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는 동이(東夷)와 회이(淮夷)가 거주하였는데, 모두 9개 부락으로 형성되어 있어서 9이(九夷)라고 일컬었다. 9이는 9려(九黎)로 9개 부락 81개 씨족으로 이루어진 부락연맹이며 통치자는 치우이다. 치우는 전쟁의 신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용맹하였지만 황제와 염제의 연합군에게 탁록(涿鹿)의 전투에서 패배하였고, 9이 부락은 황제 부락에 흡수되었다고 전해진다.

(국역)
헌원이 생활하던 시기에는 신농씨의 통치력이 쇠약해져서 제후들은 서로 침략하여 공격하고 백성을 탄압하였지만 신농씨는 그들을 정벌할 수 없었다. 그래서 헌원은 무기를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군사를 훈련시켜서 신농씨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는 자들을 정벌하였는데, 제후들이 모두 와서 헌원에게 복종하였다. 그러나 치우는 가장 포악하여 정벌할 수 없었다.

(참고)
《3황본기(三皇本紀)》가 없는 이유-중화문화에서 3황은 5제와 더불어 빠지지 않을 중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면 《사기》에서 〈3황본기〉는 왜 없을까? 첫째, 3황 시대는 5제시대보다 훨씬 이전의 시기로 관련 자료의 결핍과 신화적인 색채의 농후하여 사마천의 사실 기록에 곤란함이 있었을 것이다. 둘째, 무력과 재덕을 겸비한 황제(黃帝)가 출현하여 염제(炎帝)와 치우(蚩尤) 등과의 부락 통합전쟁을 벌인 것은 신화시대와 역사시대를 구별하는 구체적인 의의가 있다. 셋째, 3황시기의 복잡하고 분열적인 현상은 유가(儒家)의 통일적 사상관념과 배치되기 때문에 사마천이 부득불 〈3황본기〉를 뺐을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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