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5일 목요일

5제본기 7

1-007.
(원문)
黃帝居軒轅之丘, 而娶於西陵之女, 是爲嫘祖。 嫘祖爲黃帝正妃, 生二子, 其後皆有天下 : 其一曰玄囂, 是爲靑陽, 靑陽降居江水 ; 其二曰昌意, 降居若水。 昌意娶蜀山氏女, 曰昌僕, 生高陽, 高陽有聖德焉。 黃帝崩, 葬橋山。 其孫昌意之子高陽立, 是爲帝顓頊也。

(음역)
황제거헌원지구, 이취어서릉지녀, 시위루조。루조위황제정비, 생이자, 기후개유천하:기일왈현효, 시위청양, 청양강거강수;기이왈창의, 강거약수。창의취촉산씨녀, 왈창복, 생고양, 고양유성덕언。황제붕, 장교산。기손창의지자고양립, 시위제전욱야。

(주석)
1. 황제(黃帝)-1-001-주석1 참고.
2. 헌원지구(軒轅之丘)-지리상 위치는 희수(姬水) 부근으로 현재 섬서성(陜西省) 경내의 위하(渭河) 유역 일대이다.
3. 서릉(西陵)-현재 비교적 유력한 주장은 하남성(河南省) 서평현(西平縣)일대이고, 이곳에 거주하던 종족의 성씨는 서릉씨로 일컬어졌다.
4. 루조(嫘祖)-달리 루조(累祖) 라고 쓰며, 전설에 서릉씨(西陵氏)의 딸 루조가 양잠을 발명했다고 전해온다. 북주(北周) 이후에는 양잠의 신인 잠신(蠶神), 선잠(先蠶)으로 일컫고 제사를 지냈다.
5. 현효(玄囂)-황제와 루조 사이에 출생한 첫째 아들이다. 이름은 지(摯)이고 호는 청양(靑陽)이다. 태호(太昊)의 법도를 발전시켜서 후대 사람이 소호씨(少昊氏)라고 일컬었다. 또 청양씨(靑陽氏), 금천씨(金天氏), 궁상씨(窮桑氏), 운양씨(雲陽氏), 주선씨(朱宣氏)라고 일컬으며 대대로 전해져 성씨가 되었다. 곡부(曲阜)에 도읍을 정하고 사후에 운양산(雲陽山)에 매장되었다고 전해온다.
6. 청양(靑陽)-현효의 호이다.
7. 강수(江水)-장강의 지류로 서릉협(西陵峽) 지역으로 흘러가는 강이다. 일설에는 민강(岷江)을 가리키며 사천성(四川省) 중부에 있고 발원지는 민산(岷山) 남쪽 기슭이다.
8. 창의(昌意)-황제와 루조 사이에 출생한 둘째 아들이다. 그 후에 촉산씨(蜀山氏)의 여성 창복(昌僕)을 부인으로 삼고 전욱(顓頊)을 낳았다.
9. 약수(若水)-현재 비교적 유력한 주장은 아롱강(雅礱江)을 가리키고 사천성(四川省) 아안시(雅安市) 형경현(滎經縣)에 있다. 아롱강은 고대에 약수、로수(瀘水)로 불렸고, 금사강(金沙江)과 매우 흡사하여 약수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10. 촉산씨(蜀山氏)-촉산에 거주하는 종족을 가리킨다. 촉산은 현재의 사천성(四川省) 중부에 있고 민강(岷江) 상류에 위치한 민산(岷山)을 말한다.
11. 씨(氏)-하(夏), 상(商), 주(周) 3대 이전에는 성과 씨는 구분되었다. 남자는 씨를 일컬었고 여성은 성으로 일컬었다. 씨는 귀천을 구별하였고 귀한 자는 씨가 있고 천한 자는 씨가 없었다. 진(秦), 한(漢) 이전에는 성은 씨의 근본이고 씨는 성에서 나왔다. 후대에 성과 씨는 구분하지 않고 혼용해서 사용했는데 그 시작은 사마천(司馬遷)이라고 전해온다.
12. 창복(昌僕)-촉산씨의 여성으로 황제와 결혼하여 전욱(顓頊)을 낳았다.
13. 고양(高陽)-5제(五帝)의 한 명인 전욱(顓頊)을 가리킨다. 전욱의 부락은 일찍이 고양 일대에서 활동하였고 처음에 세운 나라 명칭도 고양이었으며, 고양 지역을 봉지로 받고 도읍을 제구(帝丘)에 세워서 고양씨(高陽氏)라고 일컬었다.
14. 교산(橋山)-상고시대 유교씨(有喬氏)의 거주지로 교산이라고 일컬었다. 현재 탁록현 동남쪽에 있고, 산 정상에 천연의 석교(石橋)가 있어서 교산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또 소교산(小橋山)으로도 불리며 황제의 묘지가 있다.
15. 전욱(顓頊)-5제(五帝)의 한 명으로 고양씨(高陽氏)라고 일컫는다. 성씨는 풍(風)이고 15세에 소호씨를 보좌하여 9려(九黎) 지역을 다스렸다. 황제(黃帝)가 사망한 후에 즉위하였고 5덕 중 수덕(水德)의 제왕으로 현제(玄帝)라고 일컬었으며 전욱력(顓頊曆)을 제정하였다.

(국역)
황제는 헌원의 언덕에 거주하였고 서릉씨(부족)의 여성을 부인으로 맞아들였는데, 그녀가 바로 루조이다. 루조는 황제의 정실 부인으로 아들을 2명 낳았으며, 그들의 후예는 모두 천하를 차지하였다. 첫째 아들은 현효인데 이 사람이 바로 청양이며, 청양은 강수 지역을 하사받고 거주하였다. 둘째 아들은 창의이고 약수 지역을 하사받고 거주하였다. 창의는 촉산씨(부족)의 여성을 부인으로 맞아들였는데, 그녀는 창복이라고 일컬었고 고양을 낳았으며 고양은 성스러운 덕행을 가지고 있었다. 황제가 사망하고 교산에 장사지냈다. 그의 손자이고 창의의 아들인 고양이 즉위하였는데 이 사람이 바로 전욱이다.

(참고)
신화와 전설에 나타난 전욱(顓頊)의 형상-문헌과 달리 신화와 전설에 나타나는 전욱은 포악한 천제(天帝)로 등장한다. 그는 태양, 달, 별을 모두 북쪽의 하늘로 옮겨놓고 백성을 괴롭게 하였다. 또 그에게 불만을 품은 공공(共工)이라는 천신(天神)을 가혹하게 처벌하였으며, 여성이 길에서 남자와 마주치면 한쪽으로 피하여 양보하고 이를 어겼을 경우에는 엄벌에 처하는 법률을 공포하였다. 이상의 내용으로 짐작할 수 있는 당시 사회는 첫째, 전욱의 권력이 황제(黃帝) 시대와 비할 수 없이 강력해졌고 둘째, 주변 부락 즉 염제(炎帝)의 후손 부락과의 계속된 쟁탈전쟁에서 승리하였으며 셋째, 모계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낮은 부계사회로 변해가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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